직지사 김천불교대학, 부처님의 발자취를 찾아 인도 성지순례 다녀오다.
직지사 김천불교대학, 9박 10일 인도 성지순례 성료.
직지사 김천불교대학은 부처님께서 출가하여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 열반에 이르기까지 인도의 주요 불교유적지를 체험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달아 가기 위한 인도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인도 성지순례에는 직지사 자성 학감 스님, 덕종 스님을 비롯한 오애순 김천불교대학총학생회 회장 및 불교대학‧원 도반과 마니불여행사 대표를 포함한 36명이 지난 10월 29일 ~ 11월 7일 동안 9박 10일의 일정으로 대한항공편으로 인도 델리에 도착해 여정을 풀었다.
일행은 10월 30일 오후, 델리에서 바라나시에 도착하여 사르나트 박물관을 관람하게 되었으나 일체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부처님의 유적과 힌두교 유적 등을 관람하였고, 특히 인도 모든 화폐에 인쇄되어 국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아쇼카 석주 위 4마리 사자 상과 법륜상 외에 굽조 왕조 때의 석가모니 부처님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조각상은 아직도 생생한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다.
10월 31일 새벽, 인도의 힌두교 인들의 성지로 불리는 유명한 갠지스 강을 가는 도중 거리에서 인도인들의 생활상을 접할 수 있었으며, 인도의 주요 음료인 우유와 물, 홍차 및 설탕을 혼합한 달달한 맛을 내는 짜이라는 전통 음료를 마실 수 있는 시간도 주어졌다.
이어 갠지스 강에서 배를 타고 참배객들의 성수기도, 목욕, 화장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으며, 독특한 이슬람 사원들도 간혹 눈에 띄어 이색적인 풍경을 담았다.
또한, 각자 갠지스 강에 연등을 띄워 보내며 불자로서 부처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이 돈독해질 수 있도록 소원을 빌기도 했으며, 갠지스 강 건너 모래밭에서 샤르르르 흘러내리는 모래를 주먹에 쥐었다 폈다 하며 기분 좋은 감촉을 만끽하였고, 갠지스 강의 일출장면은 타국에서 처음 느낀 묘한 감동이었다.
아침 공양 후 불교 4대 성지인 녹야원(사르나트)에 들러 아쇼카 왕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설법한 곳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다메크 스투파(법륜탑)를 참배하였다. 다메크 스투파는 인도의 중요 불교 관련 건축물 중에 하나로 기단부가 직경 28.5m, 높이 33.5m, 원형 추정 43.6m로 사라나트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성지순례단은 명상과 법회를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슴에 깊이 새기며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불교에 더욱 정진할 것을 다짐했다.
그리고, 아쇼카 왕에 의해 건립되어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리를 보관했던 다르마라지카 스투파(법왕탑)은 1794년 영국식민지 시절 바라나시 장관이 자신의 저택 건립을 위해 벽돌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부처님의 사리가 들어있는 항아리를 알아보지 못하고 갠지스 강에 버렸다고 알려졌으며, 현재 스투파는 기단부만 남아있어 안타까운 역사로 남아있다.
아울러, 아쇼카 왕이 인도를 처음 통일하며 불교를 인도 국교로 정하며 세운 아쇼카 석주는 이슬람의 침공으로 파괴되어 현재는 기둥의 하단만 남아 있고, 원래 높이는 15.25m, 직경 71.1cm 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석주 상단은 현재 사르타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특히, 이날 저녁 호텔식당에서는 성지순례 기간 중 생신을 맞이한 도반을 위해 케이크를 마련하여 함께 축하해주는 흐뭇한 광경을 볼 수 있었으며, 김천불교대학생들이 각자 소개를 통해 도반들과의 끈끈한 정을 느낄 수 있는 뜻깊은 날이 되었다.
11월 1일 아침, 불교 4대 성지의 한 곳인 비하르 주의 보드가야로 이동해 부처님께서 6년 동안 수행하며 보리수 아래서 성불을 이루신 마하보디 사원의 금강보좌, 불족석, 법구경 설법지, 무짤린다 용왕의 연못 등 7선처를 순례하며 부처님께서 인간의 모습에서 성불을 깨우쳐 聖人으로 추앙받을 수 있었던 위대한 성지를 직접 눈으로 보면서 불심을 더욱 돈독케 하였다.
이어 부처님께서 6년 동안의 고행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나선 부처님에게 우우죽을 공양하여 기운을 회복하여 완전한 깨달음을 이룰 수 있게 한 수자타를 기념하기 위한 수자타 수투파를 순례하였다.
그리고 수자타 수투파 인근 라즈기르 지역에서 열악한 환경에서 수업을 하는 어린 학생들에게 학용품을 전달하여 인도 미래를 이끌어갈 아이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었다.
점심공양 후 오후에 차량으로 이동하여 부처님께서 왕사성에 머물며 법화경을 설한 장소로 유명한 영취산 등정에 나섰고, 산 정상에 이르는 동안 아난존자와 목련존자가 수행하였던 동굴을 목견할 수 있었다.
영취산 정상에는 독수리를 닮은 4가지 형상의 바위도 볼 수 있었으며, 영취산 정상에서 호연지기를 느끼며 기도와 법회를 통해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청정한 불심은 깊어져만 갔다.
이어 마가다의 왕인 빔비사라가 부처님께 귀의하고 대나무 숲을 보시한 불교 최초의 절인 죽림정사로 이동해 탐방을 이어나갔다.
11월 2일 아침, 비하르 주의 라즈기르에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최초의 대학인 나란다 대학으로 이동하였다. 나란다 대학은 사리불자, 목련존자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으며, 마하가섭 존자가 부처님으로부터 제일 처음 계를 받은 곳이다. 달마대사가 마지막 계를 받고 중국으로 건너가 혜가 스님에게 계를 내려 선종의 시초가 되었다 한다.
나란다 대학은 631년 당나라의 현장 스님이 방문했을 당시 ‘寶臺가 별처럼 줄지어 서고 玉樓가 산처럼 솟아 있다’는 기록이 말해주듯, 그 당시 900만권의 책이 소장되어 있었고, 매일 100여개 강좌가 열렸으며, 1만여 명의 스님이 2000여명의 교수로부터 불교를 포함 논리학, 수학, 의학 등 다양한 학문을 가르쳤던 곳이다. 직경이 10km인 나란다 대학은 아직도 1% 정도밖에 개발이 되지 않았다고 하니 그 위명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나란다 대학 참배 후 바이샬리로 이동하여 부처님께서 열반 전 마지막 안거를 보내신 곳이며, 기생 암바팔리가 망고 동산을 보시한 곳이기도 하며, 부처님 열반 후 제2차 결집이 개최된 바이샬리의 대림정사에서 참배를 하였다.
이곳 대림정사는 바이샬리의 큰 기근과 전염병을 퇴치해준 부처님께 감사하며 라차비족이 기증한 정사로, 열반 3개월 전에 또 다시 마지막으로 들렀던 곳으로 부처님은 바이샬리를 사랑하셨고, 바이샬리 사람들은 부처님을 존경하였던 곳이다.
훗날 아쇼카 왕이 부처님의 말씀을 전해준 아난에게 감사하다는 뜻으로 스투파와 석주를 세웠다고 한다.
11월 3일 아침, 바이샬리의 부처님 8등분 근본 사리탑을 참배하였다. 이곳은 부처님께서 45번째 마지막으로 안거하신 곳으로 부처님께서 열반하시고 8등분 된 사리를 분배받은 바이샬리 리차비족이 스투파를 세웠던 곳으로, 이후 아쇼카 왕이 스투파를 해체하고 사리를 출토해 일부는 봉안하고, 나머지는 나누어 자신이 여러 곳에 세운 새로운 스투파에 모셨다고 한다.
점심 공양 후, 케사리아로 이동하였다. 케사리아는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후 가사를 갈아입은 곳이자 부처님이 열반 길에 케사리아를 들렀을 때 부처님에게 마지막 공양을 올린 춘다의 고향이기도 하며, 리차비족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발우를 주신 곳인 케사리아 대탑으로 이동하여 참배하였다.
이어 불교 4대 성지의 한 곳이자 부처님의 열반지인 쿠시나가르로 이동하여 부처님께서 중생을 구제하고자 깨달음을 널리 설하시고 열반하신 다비장(라마브하르)에서 기도와 헌화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여법하게 따를 것을 가슴속으로 맹세했다.
그리고, 발걸음을 옮겨 부처님이 모셔져 있는 열반당에 들러 부처님 동상에 가사를 입혀드리고 부처님의 존체에 경건한 마음을 담아 찬탄의 기도를 드렸다.
아울러 열반당을 관리하고 있는 가네슈와르 주지 스님을 친견하여 쿠시나가르 열반당의 발굴에 대한 일화를 청취하고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직접 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11월 4일 아침, 코살라 국의 수도인 사위성에 있는 사찰인 쉬라바스티 기원정사는 수닷타 장자가 기타 태자의 동산을 동산 전체에 금을 깔고 동산을 사서 부처님께 기증한 정사로 부처님께서 금강경을 설하였다고 전해지며, 부처님께서 45번의 안거 동안 14번째 안거를 시작해 19번째(55세)~44번째 안거를 하였던 곳이다. 마지막 안거는 바이샬리에서 안거하셨다.
이곳에는 많은 수도숭들이 상주하며 각국에서 몰려온 불자들이 기도를 드리고 수도승들에게 보시를 전하는 유명한 곳이다.
또한, 근처에 부처님이 물을 길어 드셨던 우물이 있고, 그 주변으로 아난다 보리수도 보호되고 있어 많은 불자들이 명상과 기도를 드리는 곳이다.
오후에는 수닷타 스투파와 앙굴라 스투파와 천불화현 터를 탐방하였다. 부처님께 동산을 보시한 것을 기념하여 만든 수닷타 스투파는 현재 흔적이 남아 있으나, 그 당시 강성하여 번창했던 코살라 국의 사위성은 부처님의 고국인 석가족을 멸망시킨 업보인지는 알 수 없으나 역사학자들은 그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다고 전해지고 있다.
다른 방문지인 앙굴라마라 스투파는 흉포한 살인마인 앙굴라마라가 1백명의 사람을 죽여 손가락 1백 개를 목걸이를 만들면 도를 깨우친다는 잘못된 믿음으로 99명의 사람들을 살해하였고, 마지막 100명 째 어머니를 보고 살해하려다 그 자리를 지나치신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앙굴리마라를 교화시켜 만들어진 스투파이다.
11월 5일 오후, 버스로 8시간을 이동하여 찾은 곳은 인도의 대표적인 관광지이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고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속하는 타지마할을 관람했다. 무굴 제국의 황제인 샤 자한이 사랑하는 왕비 뭄타즈를 위해 세운 묘이다.
타지마할은 1643년경에 착공되어 매일 2만 명의 노동자들이 동원되어 완공되기까지 총 22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역대를 통틀어 현재까지 왕이나 임금들이 부인이 살아있을 당시는 잘해주었어도 죽음에 이르렀는데도 불구하고 결혼을 마다하고 죽은 부인을 위해 그리움과 사랑을 표현한 사람은 무굴 제국의 샤 자한 황제가 유일하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인도 성지순례 기간 동안 불교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우리들에게 많은 깨우침을 주신 마니불 여행사 대표님과 항상 자상한 모습으로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어하고 지루하지 않도록 노력해준 인도 현지 가이드인 고럽 덕분에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강행군을 펼치면서도 도반들을 위해 격려하고 지도해주신 자성 학감 스님과 덕종 스님을 비롯해 항상 따뜻한 마음으로 도반들을 챙겨주신 오애순 회장님과 김춘옥 총무님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성지순례 가는 곳마다 위대하고 경이로운 부처님의 발자취에 우리 불제자들은 항상 감동과 희열을 느꼈으며, 이번 성지순례가 도반들과의 유익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김천불교대학의 성장은 물론 개개인 공부에 밑거름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불교신자로서 더욱 정진에 힘쓸 것을 다짐해 본다.